걷기만 해도 운동이 될까 — 1만 보와 헬스장의 사이

트레이너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의문

얼마 전 트레이너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걷는 것으로는 그냥 조금 낫다뿐이지,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요. 솔직히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매일 1만 보씩 채우면 뭔가 운동을 한 것 같은 뿌듯함이 들지만, 정작 몸이 단단해지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래서 한번 제대로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걷기는 정말 ‘조금 나은’ 수준에서 멈추는 운동일까요? 그리고 30대 이후로 근육이 줄어든다는 말, 근육이 호르몬까지 만든다는 말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30대부터, 근육은 조용히 빠져나갑니다

먼저 근육이 준다는 이야기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실입니다. 건강한 20·30대는 체중의 30~40%가 근육이지만, 30대 이후부터는 해마다 0.5~1%씩 근육이 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50세를 넘어가면 감소 속도가 더 빨라져서, 70대에는 전성기의 절반 수준까지 쪼그라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조용하게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아프지도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그냥 매년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빠져나갑니다. 근육이 지나치게 줄어 신체 기능까지 떨어지는 상태를 ‘근감소증(sarcopenia)’이라고 부르는데, 이건 단순한 체력 문제를 넘어 낙상, 골절, 당뇨, 심혈관 질환 위험까지 끌어올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즉, 가만히 있으면 근육은 ‘유지’되는 게 아니라 ‘감소’하는 게 기본값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후퇴인 셈이지요.

걷기가 채우지 못하는 것

그렇다면 매일 걷는 것으로 이 감소를 막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트레이너의 말이 맞아떨어집니다.

걷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입니다.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고, 혈압과 혈당 관리에 도움을 주며,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훌륭한 운동이에요. 이건 분명히 챙겨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걷기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동네 마실 수준의 4~5km/h 걷기로는 근육에 ‘부하’가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근육은 일정 강도 이상의 자극을 받아 미세하게 손상되고, 그것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강해지고 커집니다. 그런데 가벼운 걷기는 이 자극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그래서 걷기만으로는 빠져나가는 근육을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스쿼트, 계단 오르기, 아령 같은 근력 운동이 따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걷기가 ‘심폐를 지키는 운동’이라면, 근력 운동은 ‘근육을 짓는 운동’입니다. 둘은 대체재가 아니라 역할이 다른 운동이에요.

“근육은 곳간이다” — 근육이 호르몬을 만든다는 말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했던 부분, 근육이 호르몬을 만들고 그것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사실입니다. 그것도 꽤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고요.

예전에는 근육을 그저 ‘몸을 움직이는 조직’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2012년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린 연구를 계기로, 근육이 다양한 생리활성 물질을 분비하는 일종의 내분비 기관이라는 점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근육에서 나오는 호르몬 같은 물질들을 통틀어 ‘마이오카인(myokine)’이라고 부릅니다.

마이오카인은 운동할 때 근육에서 직접 분비되어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집니다. 그러면서 인슐린 감수성을 높여 혈당 조절을 돕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백색지방을 에너지를 태우는 갈색지방처럼 바꾸기도 합니다. 암 예방이나 치매 억제에 관여한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연구자는 근육을 두고 이로운 호르몬이 가득한 ‘곳간’에 비유하면서, 운동이야말로 그 곳간을 여는 열쇠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건강을 위해서는 반드시 근육운동을 해야 하고, 근육이 호르몬을 제어해 건강을 만든다”는 말은 방향이 맞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짚자면, 근육이 모든 호르몬을 ‘제어’한다기보다는, 근육 스스로가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이고 그 분비의 스위치가 바로 ‘운동’이라고 이해하시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가만히 있는 근육은 곳간 문을 닫아둔 상태인 셈이지요.

1만 보와 헬스장 사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걷기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심폐 건강의 바닥을 받쳐주는, 누구나 매일 챙겨야 할 기본기입니다. 다만 걷기’만’으로는 빠져나가는 근육을 붙잡지 못하고, 근육이라는 호르몬 곳간의 문도 충분히 열지 못합니다.

그래서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입니다. 1만 보로 심장을 지키고, 일주일에 며칠은 근력 운동으로 근육을 지으면 됩니다. 트레이너가 “걷는 걸로는 안 된다”고 한 건, 걷기를 그만두라는 뜻이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저는 오늘부터 1만 보 끝에 스쿼트 몇 세트를 붙여보려 합니다.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에는, 결국 작은 부하 하나를 더 얹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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